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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냅 6개월 전

눈발 속의 한 줄기 빛

단편 스토리

눈이 부드럽게 얹힌 모직 모자, 그 속에서 파송파송 피어난 붉은 머리칼. 유리처럼 맑은 청록색 눈이 은은한 오후 햇살을 담고 있다. 아득히 먼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얀 김을 내뿜는 입술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엘라, 살포시 내리는 눈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이 마을에 뿌리를 둔 존재였다.

이 작은 도시의 문방구에서 일하는 엘라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엄마들의 일상적인 수다, 노인들의 따뜻한 인사가 어우러진 장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엘라의 마음 한편에는 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작가가 되는 것. 종이 위에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그녀의 소망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일상에 묻혀 서서히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엘라는 문방구의 무거운 나무문을 닫으며 하얀 숨을 불어넣었다. 눈이 내리는 거리를 따라 조용히 걸으며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태어나 처음 입어본 분홍색 드레스, 엄마의 따뜻한 포옹, 첫사랑의 떨리는 손길, 모두가 글로 표현하고 싶은 삶의 조각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엘라는 계획에 없던 발걸음을 돌렸다. 얼어붙은 강가로 향하는 소복이 쌓인 길을 따라 걷다가 그녀는 그만 멈춰 섰다. 강가의 눈 속에는 산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남겨진 캔버스와 같았고, 엘라는 불현듯 종이 한 장을 꺼내 그 위에 글을 써내려갔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의 청류를 따라 글자들이 흘러나왔다.

눈이 내리는 밤, 어둠에 싸인 방에서 엘라는 촛불을 켜고 그날 적은 글을 읽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글들이지만, 그 속에서 엘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었다. 눈 내리는 강가에 섰을 때의 그 기분, 마치 눈송이처럼 고요하고, 동시에 눈보라처럼 격정적이었다. 기적처럼, 언젠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글은 이내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녀의 이야기는 잔잔한 물결처럼 마을을 따뜻하게 했다. 얼음장 같은 겨울이었지만, 엘라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엘라는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의미 있게, 자신의 꿈을 한 걸음씩 걷고 있었다. 그녀가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처럼, 눈 내리는 저녁에 조용히 솟아오른 작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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